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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상해,항주,황산

<상해>루쉰공원내 매원 - 윤봉길의사 기념관

 

루쉰공원내 매원 -  윤봉길의사 기념관(매정梅軒)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역사적 의거의 현장으로 알려진

루쉰공원(鲁迅公园)은 한국관광객들이 들리는 장소입니다.

루쉰공원에 입장하여 걸어서 5분 정도 들어오면

윤봉길 의사 생애 사적 전시관인 매원(梅园, 메이위안)이 나옵니다

 그의 호 매헌(梅軒)을 따 200그루의 매화나무가 심어진 추모관입니다.

 

 

 

여름철 개방시간은 오전 5시 - 오후 9시

 

 

입장료는 15위안

 

 

매원 안으로 들어오면

윤봉길의사 업적이 소개된 석비가 나옵니다

 

윤봉길 의사 업적 소개(호 매헌)

"윤봉길 의사는 한국인으로서 1908621일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일찍이 항일구국투쟁에 투신하여 1930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왔다.

그는 1932429일 일본침략군이 이곳에서

상해사변 전승축하식을 거행할 때

 하객으로 가장하고 행사장에 들어와 폭탄을 투척하여

상해주둔 일본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대장 등을 폭사시키고

 여러명의 일본 관원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현장에서 체포되어

19321219일 가네자와에서 장렬하게 일생을 마쳤다"

라고 석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원 가운데에 자그마한 2층 건물이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  매헌(梅軒)으로

1층은 기념관, 2층은 영상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2층으로 올라가

윤봉길의사 업적에 관한 비디오 영상을 봅니다. 

 

 

그리고 1층 기념관으로 들어옵니다

기념관 한 가운데 윤봉길의사 조각상에 있습니다,

(1908. 6.21~ 1932. 12.19)

25세의 젊은 나이에 윤봉길의사는 나라를 위해 순국하였지요.

 

 

 

 1932429일. 일본침략군이 홍구공원에서

일왕의 생일날, 상해사변 전승축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윤봉길의사는 하객으로 가장하여

수통과 도시락통, 입장권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일본의 국가가 거의 끝날 무렵

수통 폭탄을 단상 위로 투척하여

상해주둔 일본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대장 등을 폭사시키고

 여러명의 일본 관원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자결용이었던 도시락 폭탄은 터트리지 못한 채 현장에서

붙잡혔다고 합니다

 

 

 19321219일 가네자와에서의 순국을 합니다

가운데 나무는 윤봉길의사가 순국할 때 묶였던 나무형틀입니다.

 

 

매헌(梅軒)의 유촉시( 遺囑詩 )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유촉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홍커우 공원의거는 한국이 일제의 부당한

식민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었고,

한국과 한국인의 항일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경로

"홍커우 공원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정부와 공동한일전선을 강화하며

광복이 될때까지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광복후 유해발굴하여 효창공원에 안장합니다

 

1946년 3월 6일

임사정부유해발군단은

 윤의사의 순국지인 가나자와 육군묘지에서 유해발굴을 합니다.

 

1945년 5월 15일

윤봉길의사의 유해, 이봉창, 백정기의사의 유해와

함께 고국에 돌아옵니다

 

1956년 7월 6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 의사묘역에 안장합니다

 

 

윤봉길 기념관을 둘러보며 가슴이 짠 합니다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상해관광시 꼭 들려야할 장소 -  루쉰공원내 매원 -윤봉길의사 기념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