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판 - 위그르인 마을 토욕구
화염산 남쪽끝 - 풍광이 좋은 대협곡을 따라 내려오면 협곡이 끝나는 곳에 작은 회교마을 마자촌이 나온다.
기원전 1세기 흉노족에 의해 투루판에 차사전국에 세워지고.
실크로드길을 따라 차사전국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차사전국은 불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5세기 중반 고창국이 들어서면서 불교는 왕성해진다.
3-13세기, 이곳에서 30km 떨어진 ‘베제클릭 천불동'과 토욕구 대협곡에는 수많은 석굴사원이 조성되었으며
마자촌은 불교성지가 된다.
13세기초, 이슬람교가 투루판 지역에 전파되어 14세기말 이 지역이 이슬람화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슬람 성인으로 추종받는 7명이 투루판에서 전도를 하다가 죽은후, 마자촌 입구 화염산에 묻혔다고 한다.
그들이 묻힌 곳이 바로 칠현사(七賢祠)이며, 둥근돔 형태의 무덤은 흙으로 만들었다.
이슬람 성인이 묻힌 마자촌은 중국내 최대 이슬람성지이자,
세계적으로도 7대 이슬람성지에 포함돼 ‘동방의 메카’로 불린다고 한다.
토욕구 회교마을에는 69채의 집에, 42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있다.
마을 뒤로 보이는 산은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
위그르인들은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이 산을 붉은산이라 부른다.
이슬람 성지인 마을 중앙에는 규모가 큰 초록색 둥근돔의 이슬람사원이 있다.
사원 뒷편 개울을 따라 토욕구 대협곡으로 올라가면 토욕구 석굴이 나온다.
토욕구 대협곡에는 현재 94개의 석굴이 남아있으며.
이슬람세력의 지배를 받는 동안 석굴들은 방치되고 그 안의 벽화와 불상들은 훼손당했다 1904년 11월, 독일의 ‘폰 르콕(Albert von Le Coq)’은 토욕구 마을에 4개월동안 머물면서 베레크릭 천불동과 토욕구 천불동의 석굴벽화와 불상을 집중적으로 약탈해 갔다. 토욕구 마을에는 그가 머물렀던 집터가 있다. '폰 르콕'이 떼어간 벽화는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상당수가 불타 버렸다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 잊혀진 석굴은 2004년 세상에 알려졌고
2006년 회교마을과 석굴이 사람들에게 개방되었다.
30위안 입장료를 내고 회교마을에 들어오면,
마을 내부와 석굴안 벽화를 살펴볼 수가 있다.
토욕구 천불동 석굴은 거의 관리가 안 되어 있으며,
개방된 것도 3-4개 정도,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금하고있다.
포도 재배를 많이 하는 마을에는 포도 건조장이 보인다.
회교마을 근처.... 화장을 금하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동네 밖에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붉은 색 흙으로 만든 공동묘지.
토욕구 언덕위에서 내려다 본 토욕구 마을.
마을 옆... 넓은 들에 수십개의 유전 시추시설이 보인다.
토욕구 계곡 위에서 내려다본 위그로족 토욕구 마을의 황토빛 마을전경
다음날 들린 투루판 박물관,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토욕구 마을이 소재가 되어, 그림속으로 들어와 있다.
황토빛 짙은 토박한 토욕구 마을을 떠 올리며
그림을 감상하다가, 사진속으로 담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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