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궁(阿房宮)유적지-서안
서안시내에서 남서쪽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진(秦)나라 아방궁(阿房宮)유적지를 방문했다.
현재의 아방궁은 1990년 옛 아방궁 터에 영화촬영지로 복원한 것으로,
원래 아방궁의 1/5 사이즈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아방궁터는 1961년에 국무원에 의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아방궁은 동서 2,500m와 남북 1,000m의 크기로
앞의 전(殿)과 뒤의 궁(宮), 두 부분으로 나뉘어 졌다.
전의 유적지는 동서 1,300m와 남북 500m의 60만 평방미터의 면적으로
1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나라 시인 杜牧의 '아방궁부(阿房宮賦)'를 새겨놓은 비석이
아방궁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아방궁부' 비석 오른쪽으로 5번째 줄에 보면
五步一樓 : 다섯 걸음거리마다 정자가 있고
十步一閣 : 열 걸음마다 누각이 있네.라고 기록된 것을 미루어 보면
아방궁의 규모를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아방궁 (阿房宮)은 중국 진(秦)나라의 궁전으로,
진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한후 9년째인 BC 212년확장공사가 시작되었다.
진시황제는 아방궁의 건축중에 죽고 2대 황제때 완공된다.
진시황제의 만리장성, 아방궁과 같은 무리한 공사로 경제가 힘들게 되며,
농민들의 원성으로 난이 일어나 항우(項羽)가 이끈 병사는 함양을 함락하고
아방궁을 불에 타서 폐허로 남게된다.
복원된 아방궁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석상이
조금은 어색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는다..
복원된 아방궁에 들어가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전면으로 아방궁전이 보인다.
궁전으로 들어가는 계단 중앙에 진시황제가 관광객을 맞는다.
영화세트장으로 그 당시의 문헌을 참고하여 복원하였다고 하나
시멘트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소품을 보며 많은 아쉬움이 생긴다.
궁전으로 계단을 올라가 뒷편으로 가면 란지 연못이 나온다
란지 연못 가운데에는 란지궁과 그 뒤로 부두가 있다.
아방궁 당시 그 옛날에는 운치가 있었으리라
2층으로 올라가니 진시황제가 머무는 곳을 재현해 놓았는데,
관광객들에게 옷을 빌려주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아방궁전에서 내려다 보니 1/5로 축소해서 지은것이이렇게 넓게 보이는데
실제 건물이면 얼마나 컸을까?
9999칸의 화려한 건물 아방궁을 머리속으로 그려본다.
넓은 광장 좌우로 길이가 긴 2층 회랑이 세워져 있다.
양 옆 회랑 1층 벽에는 진나라 역사를 순서대로 그린 벽화로 채워져 있다
벽화그림은
삼십만 대군과 함께 만리장성 쌓는 그림.
통일한 진에 속한 소수민족들,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들을 데리고 간 서복이야기,
분서갱유, 청동마차 수레를 타고가는 진시황제의 행차그림.
진시황이 죽을 때 만드는 유언장 만드는 장면.
연회에서 항우와 범증, 유방과 장량 그리고 칼춤
초한전쟁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회랑벽화- 진나라 역사이야기
회랑벽화- 진나라 역사이야기
만리장성, 불로초, 아방궁, 분서갱유,,,,
역사시간에 배운 중국의 진시황제의 이야기를 기억속에서 꺼내면서
벽화를 살펴보는것도유익한듯하다
회랑을 지나 밖으로 가니 넓은 정원이 나온다
상천대
정원에는 진나라 당시모습을 재현하였다.
아방궁 유적지가 우리나라 황룡사지 터와 같이 빈터로 남아 있다면,
넓은 터를 보면서 웅장하고 화려했던 아방궁을
복원된 아방궁보다는 훨씬 아름답게 마음속으로 상상하며 그릴것 같다.
아방궁을 보고 서안 시내로 가는길, 성벽을 보니 이곳이옛도시 장안임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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