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규슈

시마바라성 천수각 기독교 자료실

 

시마바라성 천수각 기독교 자료실

 

 

시마바라성 천수각 기독교자료실을 방문한다.

시마바라성은 시마바라의 상징성으로 1624년 시마바라 영주

마쓰쿠라시케마사가 축성한 성으로,

시마바라의 기독교 탄압의 중심이 된 곳이다

천수각 입장료는 520엔, 개장시간 : 09:00 ∼ 17:00

시마바라성 외부는 무료이다.



천수각 1층은 기독교 자료실로 시마바라난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시바마라 반도 지도

 

오른쪽 윗부분에 시마바라(도원島原) 중간지역이 雲仙(운젠)

시마바라반도 아래부분에 하라성(原城)이 있다.

 

1637년 10월,시마바라난은시마바라영주와아마쿠사 영주의

가혹한 천주교 탄압과 무거운 세금에 반항한농민들에 의해 일어났다.

 

당시 하라성을 근거지로 난을 일으킨 장수는16세의 독실한 신자인

아마쿠사 시로(프란치스코).

또 그를 따라 난에 참여한 약 3만7천여명도 대부분 신자였다.

 

12만명의 진압군에 의해 90일만에 전원, 신앙을 위하여 순교한다.

 

사료(史料)에 의하면 당시 3만7천의 군사와 부녀자,

노약자들이 모두 전투 중 죽거나 포로로 잡혀 참수형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라성터에서 발굴되는 유골 대다수가

쓰다 남은 총탄으로 만든 십자가나 성모마리아가

새겨진 매달을입에 물고 있어 그들의 신앙에 놀라움을 주고있다.

 

 

아마쿠사 시로(일본어: 天草四郎 1621년?~1638년 4월 12일)

 

에도 초기의 기리시탄, 세례명은 제로니모 또는 프란치스코.

시마바라 난의 총대장으로 십자가를 내세워 전투를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아마쿠사 시로가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에게 당부한 말은

"성중에서 싸우는 자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것이며 구원의 은총을 얻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땅을 흔들림 없이 굳건히 지키는 것도 하느님에게 봉공(奉公)하는 것이다"

 

아마쿠사 시로는 진압군의 하라 성(原城) 총공격에서 패하자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

 


아마쿠사 시로 동상

기타무라 세이보 작품으로 천수각 옆 기타무라 세이보 기념관 옆 정원에 세워져 있다

 

 

'아마쿠사 시로'의 진중 旗 (크기는 108cm)

 

신앙의 중심인성배(포도주)와성병(聖餠)이 기의 중앙에 그려져있고,

양쪽으로는 날개를 접은 천사가 그려져있다.

깃 맨 윗부분에 LOVVADO SEIAOSACTISSIMO SACRAMENTO

[지극히 존경하옵는그리스도의 聖事를 찬양하옵고 존경하여라] 라고

포르투갈어로 씌여져 있다.

 

깃발의 그림은 야마다 에몬사쿠가 그렸으며 중요문화재이다.

 

 

기독교 박해를 피하기 위해 부처모양으로 변조된 마리아 관음상.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상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상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상



코레지오 제단 십자가

 


운젠 지옥에서 순교하는 그림이 전시실내부에 전시되어있다.

 



시마바라성 천수각 1층 크리스천 역사자료실은

기독교 박해시절 그들의 신앙모습을 엿볼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16세기 유럽 문화가 전해지면서 시마바라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시마바라영주인 아리마 하루노부는

크리스천으로 이 지역 여러 곳에 교회를 지었고,

이곳 주민 대부분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1637년 10월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 강화와

천주교 금지령에 반발한 시마바라의 난이 발생하여

90일 동안 시마바라에서 기독교인 37000명이 순교하였다.

 

시마바라난으로 파괴된 성은 1960(쇼와 35년째)년에 복원되었으며

일본의 수많은 성중에서 유일한 기독교 성이다.

 

 

(사진 - 시마바라 홈페이지에서)

 

해마다 12월 1일부터 1월초,시마바라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만들어지고,

기독교 성인 시마바라 성주위는 크리스마스 전등을 장식하여 빛을 밝히고 있다.

 

시마바라 관광 홈페이지

http://www.shimabaraons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