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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경기도 이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韓國基督敎歷史博物館, Korean Church History Museum]

2009년 9월 17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을 방문하였다.

한국 기독교 역사박물관은 2001년 11월 30일 문을 열었다.

한국기독교 역사 박물관을 설립한 한영제 장로는

기독교문사(1955년창립된 출판사)를 운영하며 모은 그리스도교 문서 10만여 점을

기독교문사내의 향산기독교역사자료실에서 보관해 오다가 2001년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대지 500평에 200평의 지어진 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전시실과 자료실·세미나실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기독교 역사 박물관 들어오는 길 오른편 정원에 한영제장로의 공로비가 세워져있다.

한영제 장로 공로비 오른쪽 윗편에 기독교문사, 한국기독교 역사박물관,

이천한나원 설립자라고 새겨져 있다.

한영제 장로는 기독교문사를 설립하여 문서 선교에 참여하였고,

1985년 사회복지법인 한나요양원을 설립하여 1백여 무의탁 노인들을 섬기며 살았다.

2001년에는 평생 모은 10만여 점의 교회사 관련 귀중자료를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을 설립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한국교회대부흥운동 1백주년'을 기념하여 1907년 대부흥운동의 발상지인

평양 장대현교회를 이천 박물관 경내에 복원 설립하였다.

'오직예수' 만을 위해 일평생 살으신

한영제 장로님은 2008년 8월 1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국기독교 역사 박물관 내부


예수그리스도, 1930, 작자미상, 대나무를 배경으로 그림


기역자로 지어진 평양장대현교회 모형

한국기독교 역사박물관 내부


양피지 성경(앞면), 14세기 낱장 양피지 성경사본


양의 내피를 얇게 갈아 붓으로 짖접 쓴 라틴어 성경이다.

영국 윈체스터에서 필사되어 "윈체스터 성경" 이라고 불리우는데 내용은 시편이다.

장이 바뀌는 첫 글자는 금으로 칠했다.


주기철 목사 편지, 1931년 부산 초량교회에서 목회 하던 주 목사가

장로교에서 탈퇴한 윤치병 목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1920년대 사경회에서 사용한 묵시록 도해

말세도


1938년 일본 교토와 나라, 도쿄 등지를 순방하며

신사와 불교 사찰을 참배하면서 그 증표로 받은 기념도장들.


윤동주 생가 지붕 기와.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 는 북간도 용정 명동촌 출신으로

어려서 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윤동주의조부 윤하원이 명동촌에 기와집을 지으면서

지붕 기와에도 십자가문양을 새겨 신앙을 표시하였다.


한옥 예배당 십자가 문양 곱새기와.

한국인 최조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상륙했던

금강 하구에 1905년 건축한 나바위성당의 내림마루 곱새기와.

전총적으로 불신자 가정에서는 곱새기와에 용이나 도깨비, 연꽃 문양울 새기는데

교인들은 십자가와 포도열매, 삼각무늬(삼위일체의미)를 새겼다.

돌로 조각된 포도접시


큰 성경과 작은 성경

1911년 인쇄된 우리나라 최초, 신 구약 합본 성경전서와

1930년 출판된 호대용 신한문 신약전서


언더우드 타자기

1910 미국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에서 제작한 영어 타자기

1885년에 내한한 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의 아버지와 형은 타자기 회사를 경영 하였다.

언더우드는 이들의 선교 후원을 많이 받게 되었고 일찍부터 타자기를 사용 하였다.

1930년대에 한글 타자기를 생산 하였다.


사진 왼쪽에 있는 놋대야는

1926년 신의주 입안교회(1904년 창립된교회)가 창립기념일에 기념으로 만든 놋대야이다


1961년 혜촌 김학수 그림 - 호산나...예수님 예루살렘성으로 입성.


길선주목사 친필 병풍

길선주 목사 친필 병풍

영계(靈溪) 길선주(吉善宙, 1869-1935) 목사는 젊어서 선도(仙道) 수행을 하다가 기도하던 중,

"길선주야! 길선주야!" 하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1907년 평양 신학교를 1회로 졸업하고 최초 장로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이후 평양의 모교회인 장대현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하였고

<해타론>, <만사성취>, <말세학> 등 저술을 남겼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였고

1920-30년대에는 '재림신앙'을 강조하는 부흥사로 활동하다가

강서 고창교회에서 열린 평서노회 사경회를 인도하던 중 쓰러져 별세하였다.

민족운동과 관련하여, 1911년 선천 신성중학교 교사로 있던

그의 맏아들 길진형이 105인사건 연루자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1914년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다.


1919년 삼일운동 때 그는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참여하여 1년 반 옥고를 치렀는데

같은 시기 둘째 아들 길진경 역시 만세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함께 옥고를 치렀다.

길선주 목사는 독립운동과 목회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던 관계로

가족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아 한시를 남겼다.


축음기와 성가 레크드판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그들이 가지고 온 '서양 물건'들은 토착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중에도 작은 상자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 축음기는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토착민들끼리 "저 상자 안에 사람이 들어가 소리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라도 광주에서 '깡패' 소리를 듣던 최흥종은 "내가 한 번 가서 확인해 보리라." 하고

선교사 집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를 믿고 광주 최초 목사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축음기는 초기 복음 전도의 효과 있는 도구였다.

축음기 앞에 귀를 기울이고 몰려 앉은 사람들에게 성가와 전도 메시지를 담은

레코드판을 돌려줌으로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유행가나 판소리를 담았던 세속 레코드와 달리

현제명, 김자경, 김연준, 김수정, 안기영 등 기독교인 음악가들이 연주한 성가곡을

담은 레코드판은 교회 음악 뿐 아니라 우리나라 음악사에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1950년대 미국에서 녹음한 것으로 보이는 주일학교 전도용 레코드판은

노래와 이야기를 섞어 지루함을 없앴다.

성가곡 - 현제명. 김연준,김자경,김수정의 혼성 4중창

'주 예수 내 맘에 온 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테너 안기영의 '거룩한 성', '만세 반석'

주일학교 전도용 - '90마리와 9마리'(말씀), '길 잃은 양'(성가) '돌아온 탕자'(말씀),

'너의 죄 흉악하나'(성가) '긴급한 메시지'(말씀), '주 예수 내 맘에 온 후'(성가)

'기독교인의 의미, 사명'(말씀)


전시실 한쪽 벽에는 평양장대현 교회, 소래교회, 평양남산현교회,

안주 중앙교회, 신의주 동부교회, 원산중앙교회,

옛 교회 모습을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있다.

이 그림은 원만희(1941-2004, 서울고,홍익대졸업) 일산동안교회 집사님의 작품이다.


1723년 유럽에서 제작된 아시아 지도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한 것이 특징이다.


선교사 여행가방

1950년대 전도지


성찬기




기리시단성화

일본의 천주교회사는 16세기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천주교인을'기리시단'이라 불렀다.

이는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포투갈어 "크리스타오"를 음역한 것이다.

일본 '기리시단'은 토요토미와 도쿠가와 시대(17세기) 잔혹한 박해를 받아 많은 순교자를 냈고

남은 신앙인들은 19세기 종교자유를 얻기까지 지하에 숨어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들을 '가쿠레 기리시단'이라 하는데 "숨은 기독교인"이란 뜻이다.

'가쿠레 기리시단'은 감시와 박해를 피하기 위해 '불교도'로 위장하고 신앙을 지켰는데

그 과정에서 불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성화가 나오게 되었다.

이 그림도 본래 불교 사찰에서 사용하던 [보현보살도]위에 '십자가',

IHS(예수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약자)를 덧칠하여 기리사단 성화로 사용한 것이다.

바깥쪽 측면 기록에 의하면 이 그림을 최종 사용한 '가쿠레 기리시단'은 천주교인들이

많았던 일본 남큐수 아마쿠사 지역 출신이며 이 그림의 최종 소유자가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간기 '문화원년'은 1804년에 해당한다.

전시실 입구에 대진경교유행중국비 (大秦景敎流行中國碑)탁본이 전시되어 있다.

대진경교유행 중국비는 당나라때(635년) 중국에 들어와 크게 유행했던

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중국명칭)의 선교 역사와 내용을 적은 비문이다.

1625년 천주교 선교사들에 의해 서안성 서쪽에서 발굴되었으며,

1907년 서안 비림 박물관으로 옮겨와제 2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관람시간은 월-토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12시-13시 점심식간. 휴관은 주일(공휴일제외)입장료-무료.

한국기독교 역사박물관 찾아오는길-홈페이지에서

http://www.kchmuseum.org/

2009년 11월 - 2010. 5월,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민족과 함께한 교육선교의 발자취' 로 구한말과 일제강정기 기독교계

사립학교 자료 전시회이다.

10만여점에 달하는기독교 자료를 전시한 한국기독교 역사박물관과

박물관 뒷편에 복원된 평양 장대현 교회,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http://www.martyr.or.kr-/28km, 자동차로 37분 )과

양평군 양동면 단석리에 있는 시아트 뮤지엄(http://www.cam1.co.kr/ 기독교 조각공원)

(거리 48km. 자동차로 1시간 5분 소요)
신앙의도움을 주는 장소이다.(TEL : 031) 775-6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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