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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세르비아

칼레메그단내에 있는 군사박물관과 코소보사태

2011년 5월20일

칼레메그단 요새 안에 위치한군사박물관은 으로 가는길,

사진 오른쪽 흰색 망루 아래 문(제2 스탐볼 문 : Druga Stambol Kapija))을 통과하지 않고 왼쪽 계단을 올라오면 나온다.


군사박물관은 1878822일 설립되었으며,

194412월 티토의 지시에 의해 군사령부에서 각종 군사기록 및

전쟁무기들을 수집하여,

196110월부터 일반인에게 박물관을 공개하였다.

선사시대 세르비아영토, 고대로마시대 이래 이곳에서 출토된 무기들,

투르크 군대가 두고 간 무기들, 합스부르크 시대 군대의 군복과 장비들,

제1차,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사진과 자료와 훈장과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최근에 일어난 코소보 사태(1999년 3월 - 1999년 6월)에 관한 자료와

최첨단 무기들도전시하고 있는데, 군사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는 4만여점이다.

세르비아 고대사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병기와 군사장비의 변화상,

세르비아 영토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군사박물관 주변에는 1999NATO군 폭격시 사용했던 각종 미사일과 폭탄물과,

1차, 2차대전 등 전쟁에 사용했던 각종 탱크와 기관총 등을 전시되어 있다.


군사박물관 외부에는 전쟁에사용된포를 전시해 놓았는데 ....

건물 벽에 있는 LG 에어컨으로 눈길이 간다.


군사박물관은 월요일 휴관, 10시 - 17시 관람가능.


BC 400-1000년, 선사시대 세르비아 세르비아인의 발칸이주와 그 당시 무기들


칼레메그단 옛 사진


1878년 세르비아독립당시 영토


세계 1차대전 당시 사용했던 무기들


 




제1차 세계대전과 훈장



군대깃발



2차세계대전 - 훈장




2차세계대전에 사용된 무기와 철모



1999년 3월24일 - 6월9일,나토군 세르비아 공격사진

코소보사태와 나토군의 세르비아 공격.

세르비아는 헝가리인이 많이 사는 보이보디나자치주와

알바니아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코소보자치주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 중 코소보 자치주의 인구분포는 총 인구 235만명 중 알바니아인이 180만명(77%),

세르비아인이 30만명(13%)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90년대 초유고연방의 국가들은 독립의 필요성을 느껴,

1992년 슬로베니아, 1995년 크로아티아 등이 독립을 하게된다

코소보 자치주도 분리 독립을 원하여서,

19983월 코소보의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코소보 사태가 발발하였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 : 1941-2006)’

반격에 나서 코소보 반군과 반군지역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인종청소'를 시작하였다.

1999년 3월24일, 코소보 알바니아인의 학살행위가 계속되자

미국과 나토군은 세르비아에 폭격을 하여

밀로셰비치 정권을 무너뜨리고 밀로셰비치를 국제 형사재판에 회부하였다.

2006년 밀로세비치는 재판 중 감옥에서 사망한다.

코소보는 마침내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으로

2008217일 독립을 선언하면서

세르비아의 통치에서 벗어났으며, 코소보에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1999년 코소보 사태 때 미국과 나토의 공습으로 파괴된채 방치된 정부기관 건물들


코소보 사태 때 미국과 나토의 공습으로 파괴된채 방치된 정부기관 건물들,


19993월 초부터 계속된 미국과 나토군의 공습 때에 중국 대사관에

포탄이 떨어져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노란 건물 앞의 공터에는 중국 대사관이 있던 자리이다


전쟁이 끝난지 10여년이 지난 2011년 여름'

여행중에 만난 아이들의 얼굴에서평화를 느낀다.



수 많은 전쟁을 겪은 베오그라드는

여전히 동유럽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베오그라드에서의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보스니아로 향한다.